살리는 신학, 살아있는 목회

자유게시판

제목 지옥 불감증
조회수 114 작성일 21-02-06 11:09 작성자 사다리

지옥 불감증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베드로후서 2:1

 

거짓교사가 이 땅에 참으로 많습니다.

기복신앙도 거짓입니다. 세상 종교생활은 멸망의 도입니다.

세상의 복을 추구하는 모든 것들은 심판을 스스로 자취하는 것입니다. 

 

어찌 우리가 스스로 지옥으로 걸어가겠습니까?

어찌 우리가 이 땅에서 배부름으로 편안하겠습니까? 

 

아버지께서는 탄식하시는 데 우리 눈에는

아직도 세상에서 잘 사는 것만 보입니다.

잘못하면 우리도 그리스도의 대적이 될 수가 있습니다.

 

어찌 우리를 위해 아낌없이 다 주신 그리스도를

저버리고 피할 곳이 있겠습니까? 

 

이 땅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심판을 부인하는 지옥 불감증의 사람들입니다. 

 

가장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사탄이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들을 찾아서 탐심과 교만으로 공격합니다. 

 

모든 이단들은 교주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있습니다.

기복 종교는 하나님 잘 믿어서 이 땅에서 배를 채워보려는

기복 종교생활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사도로 주신 바울께서 어떻게 사셨습니까? 

 

세상 영광 다 버리고 결혼도 하지 않고 생명의 성령의 법을

전파하며 거룩한 성찬식으로 나아갔습니다.

바울은 거듭남의 표본이요, 예수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전하는 것만 예배이며 믿음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은 우리의 탐심과 교만을 물리쳐 줍니다. 

 

십자가의 살과 피에 감동되면 성령께서 오셔서 생명의 법을 주십니다.

우리도 성령강림절이 됩니다. 

 

주님만을 사랑하는 온전한 믿음이 차고 넘쳐서

이웃까지 흘러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축복입니다. 

 

사도바울처럼 주를 위해 살고 싶은 마음이 넘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결국은 물을 넘고 산을 넘어 생명을 전하고 전합니다. 

 

아버지의 집에 있는 성도들이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그저 이 땅의 문제 해결만을 구하겠습니까? 

 

아버지의 탄식하시는 소리를 들은 자녀들은 죽어가는

백성들을 바라보며 쉼 없이 사나 죽으나 살아나라고

외치며 주께 갈 때까지 달려만 갑니다.

 

이제 그만 거짓은 거두셔야 됩니다. 더 이상 시간이 없습니다.

이제는 주님만을 진실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21

 

방언한다고, 신유의 은사, 예언의 은사가 있다고 구원되는 것이 아니고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의 믿음이 있어야 구원이 된다는 뜻입니다.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하고, 모든 비밀을 알아도,

산은 옮길 만한 믿음이 있어도, 구제를 해도,

몸을 죽는데 내어줘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고

고전13장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방언, 예언, 신유 은사 등은 구원의 증거가 아닙니다.

구원의 증거는 십자가의 사랑을 행하는 믿음뿐입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계 2:5

 

성령께서 에베소교회에 하신 말씀은 어찌하든지

십자가의 사랑을 기념하라고 하십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간직하고 전하는

거룩한 성찬식의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드릴지니라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처음사랑입니다.

 

처음 사랑은 어디에서 어떻게 얻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 처절한 십자가의 사랑에서 그리스도를 구하면 처음 사랑을 주십니다.

 

진짜 사순절이 되어야 진짜 부활절이 됩니다.

처음 사랑은 반드시 십자가에서 찾아서 알고 느끼고 감동이

되므로 그 사랑을 전하고 생명을 전하는 제자 되는 것입니다.

 

처음 사랑이 없이는 믿음이 없어서 사역을 해도 사역이

되지 않고 모든 것이 자기를 위한 노래가 되어 버립니다.

 

처음 사랑이 아니고 여전히 세상 사랑입니다.

반드시 우리들의 꿈이 예수 그리스도의 꿈으로 바뀌어져야 합니다

 

에베소 성도들은 62년경에는 구원을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엡 2:5

 

그런데 약 30년이 흘려서 그들은 무서운 책망을 받았습니다. 계 2:5

 

에베소교회는 사도바울께서 약 3년 동안 심혈을 기울인 교회입니다.

그리고 디모데가 순교하면서 지킨 교회입니다.

 

어찌 거룩하던 그들이 약 30년이 못돼서 이렇게 변할 수가 있겠습니까?

 

작은 능력을 가진 빌라델피아 교회 성도들은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을 지키며 예수그리스도를

배반하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계 3:1-13

 

그들은 인내의 말씀을 지킨 이유로 시험을 면하게 하시고

이기는 자의 축복을 주셨고 면류관을 이미 주셨습니다.

그 면류관을 끝까지 지켜라 하십니다.

 

우리는 빌라델피아 교회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이 온전합니다. 우리가 두 번 기회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요 14:23

 

믿음은 예수그리스도만을 사랑할 때 예수님의 말씀대로만

살 마음이 있습니다. 성령께서 오신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교회요 구원입니다.

 

구원의 믿음은 오직 사랑하며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구원이 있다고 말만 하는 것은 허상의 믿음입니다.

 

천국의 법을 지켜야지 천국인이 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천국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믿음이십니다.

예수님이 계시면 구원이 있고 예수님이 떠나시면 구원은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쉬지 않고 예수님을 찾고 두드리고 구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의 감사가 넘치는 사람은 예수님만 부릅니다.

 

믿음은 오로지 기도하기에 힘쓰니라 이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성령 충만의 사람은 늘 기도하며 말씀을 묵상하며 행하는

빌라델피아 교회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사람을 바뀌게 합니다.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 지니라.

이 말씀의 뜻은 예수님을 늘 찾으며 예수님과 함께 말씀을 행한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등잔의 기름이 가득한 슬기로운 다섯 처녀요,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받은 착하고 충성된 종입니다.

이들이 빌라델피아 교회의 성도들입니다.

 

오로지 기도하기에 힘쓰며 흩여져서 복음을 전하는

새 예루살렘 성도들입니다.

 

이들은 밤낮으로 일하며 복음을 전하였노라고 고백합니다.

이들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만 존귀하게 되는 길을 걷는 자들입니다.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믿음은 오직 예수님을 사랑하며

원수까지라도 사랑하며 쉬지 않고 복음을 나눠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믿는 자들은 세상을 위해 일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위해서 예수님처럼만 행하는 성스러운 무리입니다.

 

그들은 세상이 어찌하든지 예배하고 기도하며 늘 기쁨으로

찬양하며 하나님의 기쁨이요, 자랑이요, 보람이길 원합니다.

 

이제 우리도 이 복된 믿음의 길을 떠나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이 있습니다.

 

그냥 이대로 세상에 안주하시면 반드시 악하고 게으른 종이다

판결을 받습니다.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마 25:30

 

지옥 불감증에서 나오셔야 합니다. 지옥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명확하게 생생하게 알고 오늘도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그리스도께 몸을 의탁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면 주님과 합한 자가 됩니다.

새 노래를 부릅니다.

원수까지라도 사랑하라 외칩니다.

오직 예수님을 위하여 예수님의 방법대로만 살아갑니다.

이 복을 풍성히 넘치도록 받으시길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평택성원교회 박충권목사드림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